영화 실미도가 영화로 제작되면서 실미도 사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실미도사건은 1971년 8월 23일 경기도 부천군 용유면 무의리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던 공군 소속 북파공작 부대원들이 교관 및 감시병 18명을 살해하고 섬을 빠져나와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한 후 서울로 진입한 사건입니다. 왜 그들이 탈영을했고 실미도 부대는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실미도 위치
실미도는 인천국제공항쪽에 위치한 섬입니다. 이때 당시에는 다리가 없었지만 현재는 다리가 생겨서 차로 다닐 수 있습니다. 실미도 사건이 있을 때에는 실미도 부대원들이 배를 타고 육지로 온 후 인천에서 차량을 탈취해서 서울로 진입했습니다.
684부대(실미도 부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684부대는 북파목적의 비밀부대로 만들어졌으며 1968년 1.21사태에 대한 보복을 목적으로 31명으로 창설을 했습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함이며 이를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혹독했으면 훈련을 받는 도중 7명이 사망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며 김일성을 죽이기 위한 비밀부대가 공론화되면 이런 분위기를 저해할까봐 국가는 684부대를 숨기고 지원까지 끊어버리는 상황이 옵니다. 이를 참지 못한 부대원들은 기다림에 불만을 품고 결국 1971년 8월 23일 오전 6시경 교관 및 감시병 18명을 살해하고 탈영을 한 것입니다.
실미도사건 결말은?
섬을 빠져나간 684부대원 23명은 인천 옥련동 독부리 해안에 상륙한 뒤 인천시내버스를 탈취하여 청와대 방향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청와대를 가는 도중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유항양행 건물 앞에 도착을 하고 이들을 방어하기 위한 부대와 총격전을 벌입니다. 그 과정속에서 부대원들은 버스 안에서 수류탄을 터트려 목숨을 끓었지만 그 중 4명은 살아남습니다.
생존자 4명은 탈영 및 국가에 위험하는 행동을 했다면 군사재판에 회부하여 1972년 3월 10일 사형이 집행됩니다. 정부에서 만들었지만 부대를 만든 정부는 이를 '실미도 난동사건'이라고 규정하고 부대의 진상을 은폐합니다. 특히 생존자 4명은 사형이 집행되는데 가족들은 그 시체를 찾고자했지만 결국 시체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이 빠르게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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